축복의 통로는 어떻게 될 수 있나?

한국의 최초의 선교사들이 있다. 그 중에 한 분이 연세대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이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원래 인도선교사로 가기 위해 준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미 인도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 조선이라는 나라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조선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줄 선교사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조선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동료 선교사들에게 조선에 가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에 가려고 하는 선교사가 없었다. 그래서 언더우드는 하나님께 조선 땅에 누군가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안타까움으로 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때 주님은 언더우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No one for Korea, How about Korea?”(조선을 위해서는 아무도 없다. 조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언더우드는 바로 이 음성을 듣고 인도를 포기하고 조선으로 가기로 결정을 한다. 조선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다고 해서 조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반대와 장애와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조선으로 가는 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많은 난관을 딛고 마침내 조선으로 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언더우드는 조선 땅에 열심히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을 읽어 보면 조선에서의 복음 전파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 열매를 맺게 한 것이다. 지금 한국 국민의 22.5%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170개국 26,677명의 선교사를 전세계에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그가 하나님의 음성에 헌신으로 응답한 결과는 너무나도 놀랍기만 하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조선은 천민과 여성에게 인권도 소망도 없던 나라였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오게 되면서 천민도 여성도 사회에 복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연세대학교의 초대 총장이 백낙준 박사이다. 그런데 이 분의 원래 신분이 백정이었다. 복음이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는 백정이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고 평생 천민으로 살다 죽어야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선교사 집의 머슴으로 들어갔다가 선교사에게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다. 백낙준의 성실함에 감동이 받았던 선교사의 도움으로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예일대학교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첫 번째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학교의 초대 총장이 된 것이다. 나중에는 문교부 장관까지 하게 된다. 숙명여대 초대 총장이 임숙재이다. 이 분은 19살에 과부가 된다. 조선에서 과부는 평생 재혼도 못하고 평생 외롭고 힘들게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과부의 운명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머리를 자르고 서울로 상경해서 부자집 가정부로 들어가게 된다. 열심히 가정부로 일하니까 주인이 임숙재를 좋게 보고 소원이 있으면 들어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때 임숙재가 두 가지 부탁을 했다. 하나는 교회에 나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야간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임숙재에게 복음이 들어가게 되니까 자신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꿈을 꾸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임숙재가 일본 동경사범대에서 유학을 하게 되었고 결국 숙명여대 초대총장으로 쓰임 받게 되는 축복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2017년 새해가 시작이 되었다.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속사람의 새날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따르고 말씀에 순종해 나갈 때 우리도 언더우드와 같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고 이 땅에 하늘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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