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게서 배우는 리더쉽

필자는 늘 리더쉽에 대한 고민을 하며 산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필자를 신뢰하고 기쁘게 따르도록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그토록 많은 세월을 가지고 공부를 해 보았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역사학자이자 리더쉽 전문가인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James MacGregor Burns)도 다음과 같이 똑 같은 말을 했다. “리더쉽은 지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면서도 가장 이해가 부족한 현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도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 보면 대부분 험담이지 자랑스러워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필자도 그런 평가에 자유롭지 못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진정한 리더를 찾기 힘든 리더쉽 위기의 시대에 필자는 예수님의 리더쉽에 주목을 했다. 예수님에게 어떤 리더쉽의 비밀이 있길래 2천 년이라는 세월의 장벽을 넘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를까?

 

첫 번째, 예수님을 통해 존재적 리더쉽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광고나 홍보가 좋아도 작품이나 상품 자체가 좋지 못하면 버림을 받게 되어 있듯이 내실이 없는 지도자나 실체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는 이미지가 좋아도 결국 버림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사무라이 세계에 소위 ‘진검승부’라는 것이 있다. 목검이 아닌 칼로 승부를 보는 단계이다. 리더쉽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오래 같이 있다 보면 지도자의 실상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참된 지도자는 존재와 본질에 진정성이 있게 마련이다.

두 번째, 예수님은 미래지향적인 리더쉽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은 현재의 능력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주목하셨다. 현재의 실패보다는 미래의 변화됨에 초첨을 맞추신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소망과 미래지향적인 시야가 없었더라면 팔로워들에 대한 기다림과 인내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팔로워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지도자를 누가 따르겠는가? 기다려 주지 못하고 참아주지 못하는 지도자를 누가 따르겠는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자신의 잠재력과 숨겨진 능력도 모른 채 평생 고기만 잡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비록 갈대와 같이 약한 마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 예수님은 사람들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계셨다. 성경에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매우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설득도 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말이 거칠고 행동도 예의가 없었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그 중심이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었다. 보통은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을 오해하거나 어떤 편견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버리게 된다. 그런데 지도자임에도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을 구별해 내지 못하고 발굴해 내지 못한다면 평생 배신하지 않는 충신을 잃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겉만 보고 판단하지 않으셨다. 나다나엘의 중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제자 삼으셨던 것이다. 지도자라면 이런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네 번째, 예수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리더쉽은 비전의 리더쉽니다. 이런 말이 있다. “배를 만들고 싶으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 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며 일감을 나누어 주는 것 같은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 훌륭한 리더는 억지로 일을 하게 하지 않는다. 팔로워들이 훙분되게 한다. 설레이게 한다. 죽음보다 더 강렬한 비전을 제시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셨다.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게 해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겁쟁이였던 제자들이 이 비전을 위해 전부 순교를 마다 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런 지도자라면 따르는 사람이 왜 생겨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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