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워야 승리할 수 있다.

공중의 제왕 독수리의 평균 수명은 70년 정도이다. 하지만 독수리가 40세가 되면 발톱이 안으로 굽어진 채로 굳어지고, 부리는 가슴으로 구부러져 먹이를 낚아채기 어려워진다. 또한 높은 하늘과 험한 산을 가볍게 자유자재로 비상했던 날개는 갑옷처럼 두꺼워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진다. 이런 상태가 되면 독수리는 먹이를 구하지 못해 죽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고통스럽더라도 새롭게 태어나기를 선택해야 한다. 거듭남을 택한 독수리는 절벽 끝 바위틈으로 들어가 홀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굽어진 부리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바위에 대고 내리친다. 머리가 깨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쉬지 않고 부리를 갈아 부리가 완전히 없어지면 그때부터는 새로운 부리가 날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다. 그렇게 새 부리가 자라면 독수리는 그것을 이용해 안으로 구부러진 낡은 발톱을 뽑아 내고 새로운 발톱이 자랄 때까지 조용히 둥지 안에 머무른다. 마지막으로 독수리는 새로 얻은 부리와 발톱으로 낡고 무거운 깃털을 모조리 뽑아 낸다. 고통을 느끼면서도 하나도 남김없이 뽑고 또 뽑고는 깃털이 새롭게 바뀌는 150여 일 동안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낸다. 그러면 비로소 독수리는 천하를 자신의 날개 아래 품고 고공 질주하는 하늘의 제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몸과 마음이 점점 굳어가는 경향을 갖는다. 몸과 마음이 딱딱해 지는 것은 질병의 증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게 되면 파킨슨 병에 걸리게 된다. 마음도 미움과 욕심이 쌓이게 되면 완고하고 강퍅해져 인간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신 이유도 제자들의 불신과 마음이 완악한 것 때문이었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신앙에 있어서 믿음이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해 지는 것은 동의어이다. 마음이 강퍅해 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잘 믿어지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된다. 최근 선교의 패러다임이 4/14 윈도우 운동으로 바뀐 것도 4살 어린이부터 14살의 청소년 시기가 지나면 머리와 마음이 굳어져 복음을 흡수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대시대 최고의 문화와 문명은 그리스였다. 지금도 대학에서 고대 철학과 역사로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 역사를 가르친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호메로스가 다 그리스인이다. 2천년 이상 서양 지성사를 좌지우지했던 그리스가 왜 쇠퇴했을까? 자기 것이 최고니까 다른 것으로부터 배우고 수용하기를 거부할 때부터였다. 중세 최고의 문화와 문명은 로마였다. 로마는 원래 유럽 변방이었다. 촌놈들이 어떻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 자신보다 더 발전하고 좋은 것이라면 과감하게 배우고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로마가 그들이 야만인이라 깔보았던 게르만 민족에 의해 망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자신의 문화와 문명에 도취되어 배우고 수용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기관이든, 민족이든, 국가이든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 죽어 가기 시작한다. 다시 비상을 꿈꾸려면 독수리와 같이 자신의 굳어 버린 부리와 발톱과 털을 뽑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회복해야 한다. 딱딱해 지고 굳어 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향해 저항하자. 부드러움과 유연함이 있다면 언제나 생명력이 약동하는 청춘으로 살 수 있다. 제 2의 전성기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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