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사람은 자기에게 늘 좋은 일만 찾아 오기를 원한다. 축복만을 사모하는 사람은 축복이 언제나 함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장미꽃을 아름답게만 보는 사람들은 주의하지 않고 장미꽃을 꺾다가 장미꽃이 감추고 있는 가시에 찔려 상처를 당하게 되듯이 축복만을 좋아하고 사모하는 사람도 반드시 인생의 함정에 빠져 낭패를 당하게 된다. 축복은 또 다른 시련과 도전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3대 재앙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가 조기 성공이고 두 번째가 중년 상처이며 마지막 세 번째가 노인 무전이다. 중년 상처와 노인 무전이 인생의 재앙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조기 성공이 왜 인생의 재앙이 되는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일찍 성공했던 사람 중에 폐인이 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만 되면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나홀로 집에”(Home Alone)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맥컬리 컬킨이다. 케빈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이 영화로 일약 스타가 된다. 그래서 그는 이미 10살의 나이에 백만 장자로 등극하게 된다. “나홀로 집에”라는 영화 이후에 그가 출연하는 영화마다 그가 받았던 출연료가 편당 800만 달러였다. 그러나 그의 조기 성공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불행과 몰락을 가져다 주었다. 컬킨이 가진 재산 때문에 그의 부모가 결별하면서 무려 2년간의 법적 분쟁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 보았던 컬킨은 인생의 회의와 슬럼프를 겪게 되면서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에 걸리게 된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과 인격을 갖추지 못했기에 조기 성공은 그에게 행복이 아닌 재앙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 축복과 성공은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니라 또 다른 시련과 도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적 성숙이 수반된 더 깊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비바람으로 바다 표면에는 풍랑이 쳐도 바다 깊은 곳에 내려가면 물결이 잔잔하듯이 인생의 시련과 고난 그리고 축복과 성공에 좌우되는 행복이 아닌 그런 인생의 조건을 넘어서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지혜이다. 기쁨의 3단계를 아는가? 1단계의 기쁨이란 어떤 조건이 충족 되었기에 기뻐하는 단계이다. 2단계는 환란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단계이다. 비록 내가 기대하던 육적인 성공도 형통도 건강도 없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시고 결국 이길 수 있음을 믿기에 기뻐하는 단계이다. 마지막 3단계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무조건적으로 기뻐하는 단계이다. 여호와 하나님 존재 자체로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최종 단계의 기쁨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수준이 어린아이의 단계까지 갈 때 이것이 가능하다. 2천년 교회사가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신앙의 거인들, 신앙의 대가들의 특징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린 아이와 같다. 이 기쁨의 3단계의 경지에 도달할 때 ‘항상 기뻐하라’가 가능하다.

 

필자는 사순절에 예수님의 행복에 대해 묵상한 적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셨던 일곱 마디를 ‘가상칠언’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여섯 번째 하셨던 말씀이 ‘다 이루었다’였다. 그리고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하시면서 운명하셨다.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예수님은 비록 십자가에서 고통스러우셨지만 그 영혼은 행복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행복이야말로 고난과 축복이라는 인생의 조건을 초월한 궁극의 행복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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