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위로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교회의 한 멤버로서 다니는 사람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우리 교회 교인 집에 놀러 왔다가 잠시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고 이곳에 여행 왔다가 주일성수를 하기 위해 목사에게 연락을 하고 딱 한 주만 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예고 없이 교회를 찾아 목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찾아 오는 사람이 있다.

 

한번은 주일에 낯선 미국인이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인근에 다니는 교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한국인인 필자가 목회하는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만나 상담하고 싶은데 언제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래서 새벽예배가 있는 평일 아침이 좋을 것 같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사람이 필자를 만나자고 했던 이유는 가정이 깨어진 이후 마음이 너무나 힘들고 아팠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아내와 자녀들에게 충실했던 평범한 가장이었는데 아내가 갑자기 자신이 싫다고 하면서 자녀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한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용서해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이다. 내가 더 잘할 테니 아이들과 다시 돌아와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아빠는 나쁜 사람이라며 아빠인 자신을 미워하도록 세뇌까지 시키더라는 것이다. 가정에 충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남편, 나쁜 아빠가 되었고 아내 때문에 자녀도 자신을 만나주지 않아 마음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애절한 이야기를 하면서 산처럼 큰 사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니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의 아픔이 내 마음에 전해져 왔다. 필자는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다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함께 아파하며 우는 것 외에는 심지어 해 줄 수 있는 말도 없었다. 이 사람이 진정이 되고 나서 물었다. “아까 새벽 예배를 드리고 개인 기도를 할 때 당신이 하나님께 무슨 음성을 들은 것 같았는데 무슨 음성을 들었습니까?” 그때 이 사람이 신기한 체험을 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환상이 열리면서 천국에 가신 부모님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모님께 위로를 받게 된 것이다. ‘이 땅에서는 네가 배신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힘이 들지만 조금만 참고 살아라. 네가 천국에 오면 천국에는 그런 배신도 고통도 아픔도 눈물도 없단다. 우리는 이 곳에서 너를 위해 기도하며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

 

필자는 이 미국인이 천국에 계신 부모님을 만난 이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힘든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어찌 이 사람뿐이겠는가? 남들에게 말 못할 상처와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다.

 

때론 필자의 위로가 그런 사람들 마음 속 고통의 그 밑바닥까지 닿지 못해 허공에서 맴도는 소리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면 목사로서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의 위로가 소용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위로는 그리스도의 위로에 까지 나아가게 만드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악과 질병과 고통과 슬픔과 시름을 다 짊어지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위로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게 하기 위해 우리는 이웃들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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