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생이다

지금 살아있는 중국의 대문호 가운데 왕멍(王蒙)이라는 분이 있다. 이 사람이 2004년에 자신의 인생 철학을 담은 책 한 권을 써서 출판을 했는데 그 책 이름이 「나는 학생이다」이다. 중국에서 가장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는 대문호이자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한 사람이 자신을 학생이라고 고백했던 것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던 것은 그가 다름아닌 배움과 학습 예찬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학습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학습은 나의 뼈(구조)이며 나의 살(재료)이다. 학습은 나의 정신이며, 추구이며, 사명이며, 분투이다. 학습은 나의 쾌락이며, 게임이며, 지적 체조이다. 학습은 나의 기둥이자 영원히 차지할 수 없는 교두보이다. 학습은 나에게 불패의 자리를 지키게 해주는 든든한 원군이다.”

 

학습에 대한 왕멍의 믿음은 탁상공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억울하고 고단했던 그의 인생을 실제로 지탱하게 해 주었던 버팀목이었다. 1948년 열네 살의 나이로 중국혁명에 뛰어들어 지하당원이 되었던 그는 18세에 베이징시 동4구위 지부의 부서기에 올랐고 19살의 나이에 쓴 장편소설 「청춘만세」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56년 그의 나이 22살 때는 문단을 대표하는 제1차 전국청년작가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58년에 쓴 「조직부에 새로 온 젊은이」라는 단편소설 때문에 극좌파가 득세하던 문화대혁명시기에 그의 사상이 우파로 의심을 받게 되면서 위그르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사는 사막의 땅, 신장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거기서 왕멍은 무려 16년이라는 세월 동안 창작은 물론 직업도 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학습하는 것도 금해졌다. 그에게 허용된 것은 오직 노동과 농사뿐이었다.

 

정치의 풍운 속에 살면서 극단의 영욕을 몸으로 겪었던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이 시기에 그가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공허와 고통의 세월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위구르 언어 학습이었다. 그는 인생의 역경을 배움과 사색을 위한 최고의 기회로 받아들임으로써 자포자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을 승화시키고 지혜를 쌓으며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1979년에 복권이 되었을 때 그에게 찾아온 기회를 극적으로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 전회 후 16년간 학습과 사색을 통해 더 깊어진 내공으로 중국 문단에 돌풍을 일으키면서 왕멍은 중국사회에 혜성처럼 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가 각인이 된 후 중앙의원으로 당선이 되었고 1986년에는 중국의 문화 대통령인 문화부 장관에 임명이 되는 인생 대역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중퇴가 전부인 그가, 그것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막의 땅에서 농사나 짓고 노동을 하던 그가 배움에 대한 믿음과 열정을 통해 이룩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1장에서 “내게서 와서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배움에 대한 초청은 새로운 언어나 심오한 학문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순종과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에 대한 배움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소개된 산상수훈에서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의’라고 말씀하셨다. 야고보 사도는 이것을 ‘온전한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서 기록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배움은 세상의 행복과 영광으로 끝나는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마음의 참된 평안과 기쁨을 얻게 해 주며 마침내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사순절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배움에 대한 이 초청에 필자도 참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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